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바깥에 대하여 - 황현중

바깥에 대하여 - 황현중 세상의 바깥이 없다면 어떻게 안으로 들어가겠어 꽁꽁 언 손을 엄니가 어떻게 따뜻한 아랫목에 넣어 주겠어 바깥이 없다면 새벽에 오줌 누러 나갔다가 바라보던 달과 별과 여치 울음소리는 어쩌라고 엄니의 품속으로 기어들어 가 더듬던 그 까만 젖꼭지는 어쩌라고 인심 좋은 애비가 어떻게 동네 사람들을 집 안으로 불러들여 신김치에 막걸리 한잔 대접하겠어 바깥이 없다면 고맙다고 누가 인사나 하겠어 잘 가라고 누가 손이나 흔들겠어 세상의 바깥이 없었다면 내가 세상으로 나가 이만큼 사람 노릇이나 했겠어 귀여운 어린애들 머리 한번 쓰다듬을 수 있겠어 어떻게 세상을 어루만지겠어 밖에서 더듬지 않으면 손을 더듬지 않고 입술을 더듬지 않고 서로가 얼싸안지 않으면 그녀를 만나 사랑이나 한번 했겠어 *시집/..

좋은 시 2022.09.25

눈물 속에는 - 김재덕

눈물 속에는 - 김재덕 글쎄, 젖지 않는 눈 있을 리 없지만 유난히 슬픈 눈은 있다 어젯밤 내린 눈이 그랬다 습설(濕雪)이라더군 작부 속눈썹처럼 떨어져 나뭇가지를 부러뜨리고 지붕을 내려 앉혔다 세상이 야단이다 어둠을 지우며 내리는 모습 누군가를 부여안고 내리는 듯 보인다 하늘에서부터 짊어지고 온 전설이나 기억 같은 그런 것들 아닌가 창틀에 내려앉은 한 녀석 그렁그렁 녹지도 못하고 망설이다 눈물 왈칵 쏟는다 잠깐 마주보다 주르르 어둠 속으로 떨어져 간 눈물 나를 아는 이 아닐까 언젠가 마주 잡은 손 놓고 떠난 이 멀리 갔다 오래 걸려 돌아온 그 사람 아닐까 바람으로 구름으로 떠돌다 슬픔으로 뚝뚝 듣는 그 사람 지나는 길에 겨우 들러 얼굴 한 번 보고 떠나는 눈물 같은 그 사람이면 어쩌나 젖은 슬픔들 또 울..

좋은 시 2022.09.25

고독과의 화해 - 류시화

고독과의 화해 - 류시화 ​ ​ 이따금 적막 속에서 문 두드리는 기척이 난다 밖에 아무도 오지 않은 걸 알면서도 우리는 문을 열러 나간다 어쩌면 그것은 우리 자신의 고독이 문 두드리는 것인지도 자기 밖으로 나가서 자신을 만나기 위해 문 열 구실을 만든 것인지도 우리가 사랑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우리를 발견하기를 바라면서 *시집/ 꽃샘바람에 흔들린다면 너는 꽃/ 수오서재

좋은 시 2022.09.25